AI와 블록체인은 왜 자꾸 함께 등장할까? | 서로 필요한 기술일까, 유행의 결합일까
AI가 다른 AI에게 돈을 보내는 시대, 블록체인은 왜 등장할까?
AI가 여행 계획을 세우다가 다른 AI에게 호텔 정보를 요청합니다. 유료 정보가 필요하면 정해진 예산 안에서 결제하고, 결과를 받아 예약까지 진행합니다.
아직 모든 AI가 이렇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처음 만나는 AI를 믿을 수 있을까요? 돈을 보낸 뒤 약속한 정보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블록체인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AI는 정보를 분석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블록체인은 여러 참여자가 거래와 기록을 공동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술입니다.
두 기술의 결합이 의미를 갖는 지점은 AI의 지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AI와 서비스가 신원·거래·검증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AI 서비스에 블록체인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기존 데이터베이스와 결제 시스템으로 충분한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어떤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만나는 AI를 어떻게 믿을까? ERC-8004
AI가 다른 AI에게 작업을 맡기려면 상대방이 누구인지, 이전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확인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를 다루는 기술 표준이 ERC-8004(Trustless Agents)입니다.
ERC-8004는 서로 다른 조직의 AI 에이전트가 신원과 신뢰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제안된 이더리움 표준입니다.
ERC-8004 프로젝트의 메인넷 배포 발표에 따르면, 2026년 1월 29일 관련 등록 시스템이 이더리움 메인넷에서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실제 시스템의 배포와 기술 표준의 공식 상태는 구분해야 합니다. 앞서 확인한 공식 EIP 문서의 상태는 Draft(초안)였으며, 시스템 배포만으로 대규모 상용화가 검증된 것은 아닙니다.
ERC-8004 공식 기술 명세는 세 가지 등록 구조를 제시합니다.
- 신원 등록(Identity Registry): AI 에이전트를 식별하고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한 구조
- 평판 등록(Reputation Registry): 이용자의 평가와 피드백을 기록하고 조회하는 구조
- 검증 등록(Validation Registry): 수행한 작업에 대한 독립적인 검증 결과를 연결하는 구조
쉽게 말하면 서로 다른 회사의 AI가 이용할 수 있는 공통 신원·평판 시스템을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등록된 AI라고 해서 반드시 안전하거나 유능한 것은 아닙니다. 가짜 평가가 쌓일 수도 있고, 검증 방식 자체가 부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ERC-8004는 AI의 신뢰성을 자동으로 보장하기보다, 신뢰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여러 참여자가 공유하도록 돕는 기반에 가깝습니다.
AI가 스스로 서비스 비용을 결제한다면?
이번에는 AI가 유료 데이터를 구매하는 상황입니다.
사람이라면 카드 정보를 입력하거나 계좌이체를 하면 됩니다. 하지만 AI가 외부 서비스를 자동으로 이용하려면 결제 과정도 프로그램이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블록체인 기반 결제는 이때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AI가 정해진 금액의 디지털 자산을 전송하면 서비스 제공자가 결제를 확인하고 데이터를 전달하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ERC-8004와 결제 기술은 구분해야 합니다. ERC-8004는 신원과 평판, 검증 정보를 다루며 결제 기능 자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실제 자동 결제에는 별도의 결제 프로토콜이나 지갑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결제 기능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AI가 돈을 잘못 보내면 어떻게 될까요?
1달러짜리 정보를 구매하라는 지시를 받은 AI가 실수로 100달러를 결제할 수도 있습니다. 악의적인 서비스가 AI를 속여 결제를 유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블록체인 거래는 일반적으로 확정된 뒤 임의로 취소하기 어렵습니다. 잘못 송금했다면 상대방의 반환이나 별도 환불 절차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I에 결제 권한을 부여할 때는 금액 한도, 거래 상대방 제한, 고액 결제 시 사람의 승인 같은 안전장치가 중요합니다.
물론 자동 결제는 기존 결제 사업자의 API로도 구현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의 필요성은 여러 사업자가 어떤 거래 기반을 공유해야 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AI가 만든 이미지의 출처도 확인할 수 있을까?
AI로 만든 이미지와 영상이 늘어나면서 콘텐츠의 출처를 확인하는 문제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에는 파일 자체보다 파일의 해시값을 기록하는 방식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해시값은 데이터의 내용을 바탕으로 계산되는 일종의 디지털 지문입니다. 파일이 변경되면 일반적으로 해시값도 달라집니다.
등록 당시의 해시값과 나중에 계산한 해시값을 비교하면 특정 파일이 변경되었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진짜 제작자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자신의 작품이라고 먼저 등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은 기록의 변경 여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최초 등록된 정보가 사실인지까지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출처 검증에는 제작자 신원 확인과 별도의 인증 절차가 함께 필요합니다.
그런데 블록체인 없이도 가능한 일 아닌가?
앞서 살펴본 기능은 상당 부분 기존 기술로도 구현할 수 있습니다.
AI 서비스가 작업 기록을 저장하거나 결제를 처리하는 데 반드시 블록체인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일반 데이터베이스가 더 빠르고 저렴할 수도 있습니다.
두 방식의 차이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필요한 기능 | 일반적인 방식 | 블록체인 활용 방식 |
|---|---|---|
| AI 작업 기록 | 운영자 서버에 저장 | 여러 참여자가 확인할 기록을 공동 관리 |
| AI 신원 관리 | 서비스별 계정과 인증 | 조직 간 공유할 수 있는 신원 등록 |
| 자동 결제 | 카드·계좌·결제 API | 디지털 자산과 스마트 컨트랙트 |
| 평판 관리 | 플랫폼 내부 리뷰 | 여러 서비스가 조회할 수 있는 평판 기록 |
| 운영 구조 | 중앙 운영자가 관리 | 설계에 따라 여러 참여자가 공동 검증 |
블록체인을 사용하면 특정 회사에 모든 기록 관리를 맡기지 않는 구조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반면 거래 수수료, 처리 속도, 개인정보 보호, 운영 복잡성 등의 문제를 고려해야 합니다.
여러 회사가 참여한다고 해서 반드시 블록체인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공동 데이터베이스나 표준 API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블록체인을 도입할 때는 한 가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참여자가 특정 운영자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도 같은 기록과 거래 규칙을 공유해야 하는가?
이러한 요구가 없다면 기존 시스템이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AI 산업이 성장하면 AI 코인의 가치도 올라갈까?
AI와 블록체인을 결합하는 프로젝트 중에는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AI 기술이 발전하고 이용자가 많아지면 관련 코인의 가격도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과 해당 코인을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앞서 살펴본 코인은 사용자가 많아지면 정말 가치가 생길까? | 네트워크 효과의 함정에서도 다뤘습니다.
예를 들어 AI 서비스를 원화나 달러로 결제할 수 있다면, 이용자가 늘어나더라도 특정 코인에 대한 직접적인 구매 수요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비스에 자체 토큰이 필요하더라도 그 수요가 지속적인 보유 수요로 이어지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AI 기술이 유망하다는 주장과 해당 암호화폐가 높은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합니다.
AI가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는 미래, 누가 책임질까?
AI는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외부 서비스를 이용하고, 다른 프로그램에 작업을 맡기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AI가 정보를 구매하고 거래까지 수행하는 일이 늘어난다면 기술적 능력만큼 신원과 책임의 문제도 중요해질 것입니다.
AI가 계약 조건을 잘못 이해하면 누가 책임져야 할까요? 다른 AI가 제공한 정보가 틀렸다면 누구에게 문제를 제기해야 할까요?
ERC-8004와 같은 표준은 이러한 문제 가운데 신원과 신뢰 정보를 공유하는 영역을 해결하려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실제 책임 소재를 정하는 법과 제도, 안전한 권한 관리까지 블록체인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AI와 블록체인을 결합했다는 발표 자체가 아닙니다.
그 결합이 기존 기술로 해결하기 어려웠던 어떤 문제를 실제로 해결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서비스가 등장할 때 두 기술의 결합도 더 분명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최종 업데이트: 2026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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